원정하 – 첫 1년을 채우며, 인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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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1년을 채우며.. ” – 원정하 목ㅅㅏ의 인도 이야기(2013년 9월 첫째주)

오는 9월 11일이 되면 제가 인도 땅에 장기 선ㄱ사로 밟을 디딘지 딱 1년이 됩니다. 드디어 첫 한 바퀴를 돌았다고 생각하니 참 감회가 새롭습니다. 파송 전, 감리 교단 선ㄱ사 교육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똑똑히 기억나는 내용 중 하나가, (아마 심리나 상담 쪽 강사 분이셨을 겁니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의 지수를 100점 만점이라 하고, 이혼이 80, 자기의 죽음이 90, 자녀나 배우자의 죽음이 100점 만점.. 이런 식의 도표를 PPT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급반전, “그런데 선ㄱ사의 선ㄱ지에서의 첫 1년 스트레스 지수가 150(!)입니다.”라고 하시더군요. 애초에 100점 만점이 아니었나 하는 불만스러운 생각도 들었지만, 그만큼 어려운 1년을 잘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이미 ‘군 입대’라는, 하루아침에 모든 환경과 정체성이 바뀌어버리는 기적을 체험한 적도 있고, 단기 선ㄱ라면 신학교 1학년 때 6개월간 인도 델리에서 DTS훈련을 받은 것을 비롯, 거의 스무 번의 경험을 갖고 있었으며, 인도에 대한 공부도 꽤 많이 하고 갔으니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으려니 했지만, 역시 150점은 150점이었습니다.ㅜㅜ

인간의 몸은 단련을 통해 강해질 수 있지만, 안구나 명치 등 단련 자체가 불가능한 부분들이 있어서 그곳을 ‘급소’라 합니다. 결코 내 힘으로 강해지거나 참아낼 수 없는 어떤 상황들.. 선ㄱ지에서의 첫 일 년은 그 급소들을 돌아가며 한 번씩 공격당해 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선ㄱ사의 편지는 현지의 영적인 필요와 교회의 승전보를 알리는 데 집중이 되어야 하지만, 오늘만은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해 보고 싶습니다. 

아. 2012년 9월 11일, 임신 칠 개월의 아내와 한 살 반 된 아기를 데리고 인도를 밟았던 첫날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깊은 밤에 도착했던 공숙자 목사님 댁, 정전 되어 손전등으로 비춰가며 캐리어를 가져다 놓고 화장실을 오갔던 그 날. 빗물이 새서 바닥까지 고인 눅눅한 방에서 어색함과 불안함에 훌쩍이던 석정이.. 부끄럽지만, 저는 어둠 속에서 아내와 아들 몰래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일상’은 시작되었습니다. 

하루에 한 글자를 100번씩 써가며 외워도 외워도 끝이 없던 힌디어 알파벳. 태권도 선ㄱ사라는 버거운 타이틀 때문에 새벽마다 정말 몸서리치며 해야 했던 온갖 발차기들, 이국땅에서 갑자기 설사를 해대는 아기를 업고 병원에 뛰어가기, 일주일 후면 들어갈 수 있다던 집이 무슨 서류, 무슨 서류 하며 하루씩 늦춰지기가 석 달이나 되었을 때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던 임신 8개월의 아내. 마침내 들어간 우리 집에서 짐을 풀고 열흘 만에 출산차 떠나던 아내와 아들의 뒷모습. 텅 빈 집에서 국제전화로 듣던 아들의 옹알이.. 

더 안타까운 것은, 주변에 무엇인가 아름다운 게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파란 하늘이나 반짝이는 별, 가로수에 내리는 달빛, 빨갛게 물드는 단풍, 산등선에 걸린 하얀 구름, 거기서 내려오는 차가운 바람..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함이 이토록 괴로울 줄은 몰랐습니다. 도리어 하루에도 몇 번씩 물먹은 개똥이나 까마귀가 뜯어먹어 내장이 튀어나온 쥐 시체를 자세히 보는 고역을 치러야 합니다.(밟기 싫으면 꼭 잘 보며 다녀야 하기 때문에) 간혹 꽤 이름난 대 자연 속 명소나 바닷가를 갈 기회가 생겨도, 쓰레기와 매연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정말 드뭅니다. 아기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슬프게도 청결함과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맥도날드밖에 없고, 석정이가 뛰어다니며 놀 수 있는 안전하고 넓은 장소는 쇼핑몰 내부뿐입니다.(그래서 살 게 없어도 한번 씩 데려갑니다.) 가끔은, 매연이 가득한 거리를 걸으며 한국의 봄 가곡, 가을 가곡, 또는 어린이 찬양들을 읊조리며 그 가사와 정서를 묵상하기도 합니다. 

자주 찾아오는 친한 이웃들은 잠시만 다른 곳을 보고 있으면 도둑으로 돌변합니다. 그렇게 꽤 많은 현찰과 아내의 패물들이 사라져 버렸지만 100%의 심증에 증언까지 있어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습니다. 뜯겨진 철망을 용접할 사람을 부르는데도 두주 이상이 걸리는 나라.. 분명히 잠갔던 문이 무엇인가로 따여 있는 것까지 확인한 날, 씁쓸한 마음으로 석달 모은 비상금을 털어 금고를 사 들여놓았습니다. 

경찰의 한마디, 변호사의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행정 업무를 뛰어다니는 일은 정말 지치고 때로는 굴욕감까지 느껴집니다. 그러나 겨우 하루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 뿌듯함 대신, ‘아 오늘 교단 진급고사 준비(처음 3년간 매년 4과목 시험 대체 리포트 및 논문, 성경 암송시험) 하나도 못했다.’라는 마음과 ‘가족들에게 한 번도 웃어주지 못했네.’라는 마음이 듭니다. 다음날 아침에 태권도를 하고,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떼려면 어서 잠이 들어야 하는데, 종일 긴장이 멈추지 않았던 탓인지 몸은 피곤해도 정신은 반짝 반짝, 어깨에 힘이 빠지지 않은 상태가 밤새 계속됩니다. 

인도에서는 제대로 끝나는 일이 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다섯 가지 과업이 있다면 “오늘은 1번부터 3번까지 했고, 4번은 반밖에 못했고 5번 과업은 손을 대지 못했다.”라고 피드백을 할 텐데. 인도에서는 “1번 일은 담당자가 출근을 안 해서 못했고, 2번 일은 1번 일이 안 된 상태에선 시작을 못하고, 3번 일은 사무실 전기가 나가서 못했고, 4번 일은 아는 사람이 담당자라 거저 되었다. 5번 일은 다음 주에 다시 와 보래.” 이런 식이죠. 그리고 다음 날에는 또 다른 과업들이 주어지고, 몇몇 과업은 잊혀집니다. 그러니 한국처럼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의 해방감, 기말 리포트를 마치고 방학을 맞이하는 환희 같은 게 없습니다. 

계속해서 작은 긴장과 신경 쓸 일들이 주어지다보니 큰 카운터펀치를 맞지 않아도, 작은 잽을 여러 번 맞아 그로기 상태가 된 선수처럼 탈진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기도 생활이나 교회 프로그램도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되지가 않습니다. 열정도 방향 없이 사그러지기 쉽구요. 그래서 어쩌다 멍하니 누워 쉴 수 있는 서너 시간 틈이 났을 때 그 대신 슬럼 심방을 다녀오겠다는 결정을 하려면 정말 투철한 사명감과 의지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1년을 살아냈습니다. 돌아보니 정착 과정의 다른 모든 아픔들이 씨앗이 되어, 전도여행과 심방 하나 하나가 포도알처럼 열려 있습니다. 콜라푸르 전도여행, 크리스마스 순회 전도, 난두르바 전도여행, 협성 훈련팀과의 북인도 단기ㅅ교, 반두트 슬럼, 마페 슬럼, 노나왈라에서의 침례식, 병원 심방들, 자베스의 유아세례.. 결국 그 몇 번의 사역들, 즉 그들 인생에서는 한 번뿐이었을 수도 있는 위로방문, 한 번 뿐이었을 수도 있었던 복음제시, 몇 번의 초라한 식사 자리들에 함께 하기 위해 그 고생과 아픔들을 격어 왔던 것이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되도록 그 시간들을 놓치지 않은 것, 그것이 제가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구령의 열정’만이 내 삶의 동기가 되기를. 먼저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다른 모든 것들을 다 더해 주신다고 하셨으니, 주님의 나라와 의, 즉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구원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다 주님께 맡기려구요. 저는 결코, 정착을 위한 정착을 하지 않겠습니다. 

작년 9월에, 이곳에서는 ‘가네쉬 축제’라는 코끼리 신 페스티벌이 한창이었습니다. 마을마다, 아파트 단지마다 거대한 코끼리 우상을 하나씩 만들어 바다까지 끌고 가서 기도문과 함께 던지는 행사인데요, 거대한 우상들의 끝도 없는 행렬이 도로를 밤새 매우고, 각 우상마다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요란하게 춤추고 노래하며 따라갑니다. 저는 안타까운 마음에 자전거로 따라갈 수 있는데 까지 따라갔었습니다. 엊그제까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통일과 대륙선교를 이야기하던 제가 며칠 만에 말도 서툴고 지리도 잘 모르는 일개 외국인이 되어, 이 지옥의 행렬에 아무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고 피눈물을 쏟으며 무력하게 페달만 밟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한명 전도하는 사이에 500명도 더 태어날 것 같은 죽음의 행렬.. 

‘이렇게 죽게 하진 않겠다. 이렇게 모두 지옥에 가게 하진 않겠다..주여, 저에게 힘을 주소서. 저희는 작은 불꽃들만 예비할 수 있으나, 성령의 기름을 부어서 전 인도에 부흥이 오게 하소서… ’ 어느새 저는 마음으로 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1년입니다. 

다시 9월이 되었고, 또다시 코끼리 축제 준비가 한창입니다. 

올해에도, 파도처럼 흘러가는 죽음의 물결 앞에 서게 되겠죠. 

하지만 분명히, 작년보다는 조금 더 담대하게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가 이곳에서 걷고 숨을 쉬는 만큼, 

매년 그 흐름은 조금씩 약해질 것을 믿습니다. 

정착 과정, 훈련 과정, 복잡한 일상을 넘고 넘어, 

결국에는, 시온의 아들들이 그 뿔을 꺽을 것입니다. 

남인도에서 순교하신 도마 사도로부터, 

저번 주에 세례 받은 자베스에 이르기까지, 

구름같이 허다한 예수의 증인들이 우리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 동안, 

기억하고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평화! 

ps.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자베스는 9월 6일에 변이 나오지 않아서 다시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비자 업무는 마지막 내무부 심사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계속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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